오늘은 제 인생에 20년을 함께했던
태권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태권도 체육관를 접목한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다녔던 것 같다.
기억이 나는 건 재롱잔치때 친구가 잡아주던 1cm 짜리 송판을
손날로 격파하지 못하고 창피해서 울었던 기억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민학교 6년 동안을 아무런 운동도 안하고 보냈습니다.
국민학교 5~6학년때 몸은 살이 올라 있었지만,
허약했던 건지 아침마다 세수만 하면 코피를 흘렸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아빠는 저에게 건강을 위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태권도 도장엘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조기교육이 빛을 바랬던 것일까요?
흰띠를 메고 시작했던 저는 한 달 뒤 2단계를 넘어서
초록띠를 메고 태권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를 가르치시던 관장님은 태권도 계에서 꽤나 유명하셨던 이춘우 사범님이셨습니다.
그 당시 국가대표시범단 부단장을 역임하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한마디로 날라다니셨습니다.
못찾아뵌지 한참 됐는데... 저도 이제 40대가 되었네요..ㅎㅎ
아무튼, 관장님의 주특기는 아래의 기술 발차기 였습니다.(이름이 생각이 안남 ;;;)
도움닫기를 하여 공중에서 송판 4장을 순식간에 격파하는 화려한 발차기 기술이었습니다.

이렇게 저에게는 태권도에 있어서 확실한 롤모델이 생겼습니다.
관장님이 하시는 건 모두 따라하려고 애썼고,
매일 6시30분에 체육관을 가서 10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관장님 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의 관장님은 점프를 하시면 한참 올라갔다 내려오셨습니다.
높이 뛰시고 체공 시간도 기셨던 것이죠.
30대 시절의 이춘우 관장님은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중, 고등학교 시절 동안 꾸준히 태권도 수련을 하였습니다.
태권도를 통한 대입을 준비하다가 수능을 망치는 바람에
일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면서
태권도를 잠시 멀리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대학 중간쯤에 4단 심사를 보기 위해
또 다시 관장님 밑에서 몸을 다시 만들고 준비를 하여 공인 4단 단증을 땄습니다.
지금은 태권도 쪽에서 4단은 단도 아니지만,
그때 제 나이때 4단은 꽤나 높은 단이었습니다.
그 이후 4단을 따고 제가 자랐던 체육관에서 사범 생활을 잠시 했었습니다.
사범 생활은 매일 아침 체육관 청소로 시작되었고,
관장님의 잔심부름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끊임없이 하는 고된 일이었습니다.
태권도를 수련하는 일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재미있었고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태권도 체육관에는 해마다 때가 되면
하복 구매, 동복 구매, 심사 신청 등의 이벤트들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저는 그것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었지만,
사범의 입장에서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태권도의 사업적인 측면을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체육관에는 부가적인 매출이 생겼습니다.
지금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때는 태권도 자체가 좋다는 생각때문에
태권도의 사업적인 측면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의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기 위한
많은 활동들을 병행하지만, 그때만 해도 투박하기 그지없는 체육관 운영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사범들에 대해 관장님은 일일히 설명해 주시는 스타일이 아니셨습니다.
수련생으로 있을 때랑 사범으로 있을 때의 처우는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그런 처우도 사범이 되는 하나의 관문이라 여기며 오히려
멘탈 훈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태권도의 사업적인 접근은 제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부분에 대한 큰 회의가 다가왔습니다.
그때 저는 태권도는 그냥 사랑하는 것으로 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직업이 아닌 취미로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태권도를 지도할 기회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찾아왔습니다.
20대 중반에 디자이너로 취업을 해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남인도 뱅갈로르 빈민촌으로 태권도 사범으로 봉사를 하러
2년동안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참 행복해던 것 같습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체육관 문을 열고
아침 운동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를 갔습니다.
오후에는 겨루기 대회를 나가는 아이들을 선수 훈련을 시키고
저녁에는 제가 어릴때 운동하던 것처럼 청소년들의 운동을 지도했습니다.
관장님에게 배웠던 모든 것들을 쏟아붇는 시간이었고,
해맑은 인도 아이들과 살을 맞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쉽게도 그때 찍었던 수많은 사진이 하드 디스크가 망가지는 바람에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ㅠㅠ

그때 아이들과 시범발차기 연습을 하다가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사고를 만나고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몽골에서도 태권도 사범생활을 잠시 했었습니다.
어찌 하다 보니 해외에서 사범 생활을 했던 것 같은데요.
솔직히 태권도는 한국보다 해외에 나갔을 때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 야말로 국뽕이 차오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길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는 질문도 많이 받게되고
그때는 한류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많은 이들이 모를 때라 "브르스 리!"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ㅎㅎ
지금은 아마도 BTS라고 부르지 않을까요?ㅋㅋ
사실, 한류의 시작은 태권도가 선구자라고 생각합니다.
국기원의 국가대표시범단은 해외 시범을 제가 어릴 때도 한해에 3~4차례 나갔다 온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도 관장님께 듣던 이야기로는 해외에서는 태권도 시범단이 국빈 대접을 받는다고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때도 미국에서 태권도로 크게 체육관을 운영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저는 지금이야 마흔이 넘어서 태권도를 할 시간도 할 장소도 없기에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태권도 처럼 몸과 마음을 모두 단련하는 수련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오늘은 태권도에 대해서 제가 경험했던 일을 짧게 소개해 봤는데요.
마지막으로 우리 자랑스러운 '국가대표시범단' 의 태권도 시범을 보시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아래와 같은 환호성을 듣게 되는게 태권도랍니다! ^^
'1. 알게된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음악을 들으면 코로나에 안걸린다? (0) | 2022.03.20 |
|---|---|
| 작은 성공에서 큰 성공으로 (0) | 2022.03.18 |
| 김어준 (0) | 2022.03.11 |
| 직장에 대한 생각 (0) | 2022.03.07 |
| 좋은 부모 되기 (0) | 2022.03.05 |
댓글